삼한시대 한국의 역사 삼한의 문화 삼한의 유물 마한 진한 변한
----- 목차 ------
1. 삼한시대
2. 마한 진한 변한
3. 삼한의 문화
4. 삼한시대의 유물
5. 마무리
1) 삼한시대
삼한은 삼국 시대 이전 한반도 중남부 지방에 자리 잡고 있던 마한, 진한, 변한을 통칭하는 말로, 청동기 시대에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성립하였던 진국에 기원을 둔 것입니다. 이후 마한의 백제국이 백제로, 진한의 사로국이 신라로, 변한의 구야국이 가야가 되었다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삼한의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마한은 경기· 충청 · 전라도 지역에 진한과 변한은 경상도 지역에 해당합니다.
삼한은 토지가 비옥해 벼농사를 짓고 오곡을 재배하는 토착 농경사회이며, 양잠하여 견 포를 직조하였습니다. 가옥은 수혈주거로부터 지상 가옥으로 발전하는 과도 단계지만, 일반적인 가옥 형태는 서까래가 있고 지붕 위에 풀이나 갈대 볏짚을 이은 초가집의 원초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한은 작은 나라들이 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인 군장을 신지, 읍차 등으로 불렀습니다. 신지는 비교적 넓은 영역을 다스리는 지도자를 말하고 읍차는 그보다 작은 영역을 다스렸습니다.
삼한은 신지와 읍차들이 정치를 이끌어 가는 사회였어요. 그중 마한의 소국인 목지국의 군장이 왕으로 추대되어 삼한을 대표하였습니다.
2. 마한, 진한, 변한
(1) 마한
마한은 고대 한민족의 54개 부족 국가 연맹체입니다. 마한은 삼한의 기간으로서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습니다. 그 범위는 한강 유역(경기도)으로부터 충청도· 전라도에 퍼져 있었으며, 월지국· 백제 등 54개국이 지역적 연합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후에 부여 등 북방계 유이민을 중심으로 형성된 백제가 마한 세력을 병합, 흡수했습니다.
(2) 진한
진한은 초기국가 형성 · 발전기에 지금의 경상북도 지역에 있었던 소국 연맹체입니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진한에 12 소국이 있었다고 합니다. 경주 지역에서 형성된 사로국은 한 연맹체 맹주국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로국은 점차 이웃 소국을 병합하여 신라로 발전하였습니다.
(3) 변한
변한은 삼한 중 하나로서 4세기경까지 낙동강 하류에 있었던 부족 국가입니다.
변한은 마한, 진한과 더불어 고조선 이후 한반도 남쪽에 생긴 삼한 중 하나였어요. 지금의 부산과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변한은 풍부한 철을 생산하여 다른 나라와 많은 교역을 하였습니다.
변한에는 12개의 나라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지금의 김해에 위치한 구야국과 안야국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규모가 컸다고 합니다. 김해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큰 무덤, 다양한 물건, 많은 철기가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변한의 작은 나라들은 나중에 가야 연맹에 흡수되어 발전하였다고 전해집니다.
3) 삼한의 문화
삼한은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려서 살기가 좋아 사는 사람들과 나라가 많았습니다. 정치와 분리되어 종교는 '천군'이라는 제사장이 이끌어 제정 분리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철이 많아 수출도 많이 했고 농사가 잘되는 지역이라 제천행사를 두 번 지내기도 했습니다. 씨를 뿌리는 5월에 한 번, 곡식을 거두는 10월에 한 번 지냈습니다.
이를 일컬어 수릿날과 계절제라고 하는데, 이게 오늘날 단오와 추석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특히 마한에서는 연중행사로 5월에 씨뿌리기가 끝나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여럿이 모여 밤낮으로 노래하고 춤을 추고 놀았습니다. 수십 명이 같이 손발의 장단을 맞추어가며 추었다 하는데, 이것은 지금도 남아있는 전라도 지방의 '강강술래' 및 경상도 지방의 '칭칭 나네'와 같은 노래와 춤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변한과 진한에는 중국의 축과 비슷한 현악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가야금과 거문고가 만들어지기 전에 있었던 우리나라 최고의 '고'로 추정됩니다. 이 '고'에 딸린 속요나 속무가 의당 존속했을 것으로 추측되나 자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고'는 6세기경 등장한 가야금의 전신으로 보이며 가야금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4. 삼한시대의 유물
삼한 시대의 시기 구분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지며, 그 속에서 각기 전반과 후반으로 구분됩니다. 전기 전반은 원형 점토대 토기, 검은 간토기, 세형동검과 함께 널무덤이 나타나는 시기로 기원전 4~3세기에 해당합니다. 널무덤에서는 청동 거울 나팔 모양 청동기· 방패 모양 청동기 · 청동 방울 등이 출토됩니다. 이러한 널무덤과 토기 및 청동기들은 중국 동북 지방의 영향, 구체적으로는 중국 랴오닝 성 일대에 살던 주민들이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혀지고 있습니다.
전기 후반은 삼각형 점토대 토기를 표지로 하는 시기로, 기원전 2세기에 해당하며 철기 보급이 늘어나 무덤에도 철기가 부장되기 시작합니다. 전기 전반의 널무덤은 집단적이지 않고 단독으로 조성되는 데 비해, 전기 후반에는 여러 기가 한 지역에 군집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후기 잔반은 기원전 1세기~ 기원후 2세기 중반으로 경주ㆍ김해 지역까지 널무덤이 확산되고, 동시에 낙랑 등과의 대외 교류가 활발해집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고고학적 현상으로는 와질 토기(낙랑 토기의 영향을 받아 밀폐된 가마에서 구운 것으로 회백색을 띠는 영남 지역 특유의 토기)의 출현을 들 수 있습니다.
후기 후반은 기원후 2세기 후반~300년경으로 널무덤에서 덧널무덤으로 바뀌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덧널무덤의 출현과 함께 무덤 규모가 월등히 커지고 그에 따라 부장품의 양과 질에서도 무덤 간 격차가 심해져 사회의 계층화가 뚜렷하게 반영됩니다. 부산 지역에서는 삼한 시대 후기의 유적과 유물이 주로 확인됩니다.
5. 마무리
기원후 삼한 시대는 한반도 북부의 고구려와 한반도 남부 신라ㆍ백제 이전의 삼한 단계에 해당합니다. 고구려와 삼한의 공통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1~3세기의 한반도 전체를 원삼국 시대라는 동일한 시대 명칭으로 묶기보다는 고구려와 그 이남의 삼한으로 구분하는 것이 한반도의 역사를 파악하는 데 더 유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초기 철기 시대와 원삼국 시대를 합하여 삼한 시대로 하자는 의견이 1990년대 중반부터 부산 지역의 고고학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주장되어 왔습니다.
삼한 시대는 어떠한 시대 명칭을 사용하든 한반도 남부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기원후 4세기 전후에 이르면 독로국은 김해 구야국과 연맹을 이루어 더욱 큰 세력으로 발전하여 신라ㆍ백제 등 삼국과 경쟁하게 됩니다.
삼한 시대는 철기 시대라고 할 만큼 많은 발전이 있었고 한국의 역사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에서 삼한 시대가 가지는 역사적 의의는 고조선과 삼국을 잇는 매개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지닙니다. 그래서 아직도 학자들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듭니다.
삼한 시대의 역사적 가치를 잘 파악하고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을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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