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건국 이야기 한국의 역사 온조 비류 구태 설화
백제 건국 설화
백제는 한국의 고대국가 중 하나로 고구려,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를 형성했습니다. 시조는 부여와 고구려에서 남하하여 마한 54연맹의 하나인 십제국에서 시작하여 6세기경 마한을 병합한 온조왕으로 전해집니다만 백제의 건국에 대한 이야기는 3가지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중 두 가지가 《삼국사기》에서 전하며, 다른 하나는 《수서와 북사》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전하는 설화가 각각 온조 설화와 비류 설화이고, 《수서》에 전하는 설화는 구태 설화로 불립니다. 《삼국사기》의 저자들은 두 이야기 중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며 양쪽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백제 건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현재 가장 인정 받는 온조 설화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에서 백제의 건국 설화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온조 설화
온조설화는 백제의 시조가 온조라고 전하고 있으며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백제 건국 설화입니다. 그 이야기를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동명성왕은 졸본에 정착하여 졸본 부여 왕의 둘째 딸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형은 비류로, 동생은 온조로 이름 지었습니다. 이후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비류와 온조는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비류와 온조를 얻기 이전에 동명성왕과 북부여의 예씨 사이에서 태어난 유리가 고구려에 찾아오자 동명성왕이 그를 맞이합니다. 또한 동명성왕이 장남 유리를 왕자로 임명하자 비류와 온조 형제는 후일을 두려워하여 새로운 땅을 찾아 남하하였습니다.
그런데 비류는 물고기를 잡기에 좋다고 하며 바닷가에 나라를 세웠으며, 온조는 농사짓기에 좋다고 하여 서소노와 강가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비류를 따라간 자들이 온조에게 와 백성들이 되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비류가 세운 땅은 짜서 백성들이 농사가 잘 지어지지 않아 백성들이 굶어 죽자 비류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죽고 말았습니다. 이 후 온조는 나라 이름을 바꿨는데, 그것이 바로 백제입니다.
비류 설화
비류 설화는 온조 설화와 달리 백제 시조가 비류라고 전하는 설화입니다. 비류 설화는 온조 설화와 두 형제의 가족과 함께 대수와 파수를 건너 비류와 온조가 함께 미추홀에 정착하였다는 점 등이 다릅니다.
북부여의 왕인 해부루의 아들 우태는 소서노라고 불리는 졸본 사람 연타발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형 비류와 동생 온조입니다. 그러나 우태가 죽자 졸본으로 망명한 주몽과 재혼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주몽은 소서노와 두 형제를 잘 보살펴 주었고, 소서노는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여 예씨와 결혼하여 얻은 아들 유리가 찾아오자, 주몽의 마음은 유리 쪽으로 기울였고, 결국 유리를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형인 비류는 아우인 온조에게 말하기를 ,"대왕의 공적이 훌륭하여 우리를 잘 보살펴 주었으나, 이제는 나라가 유리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니 다른 나라를 건국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형제는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대수와 패수를 건너 미추홀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구태 설화
이 부분은 시조가 구태설입니다.
구태 설화는 세 건국 설화 중에서 다소 신뢰성이 낮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백제가 건국한 이야기 중 하나인 만큼 주목할 만합니다.
구태 설화에서는 '고리국'의 시녀가 낳은 사내아이가 동명성왕이 되고 동명성왕이 엄수(의식 따위를 엄격하게 치름, 명령이나 약속 따위를 어김없이 지킴)에 이르자 북부여 사람들이 그를 반겼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동명성왕에게 후손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위구태'라고 합니다.
위구태는 대방에 나라를 세웠으며, 이후 동이의 대국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구테 설화에서는 '백제'의 어원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그것에 의하면 '백 마리의 개가 바다를 건넜다'고 하여 백제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원래는 10명의 신하가 그를 도와 10개의 강을 건넜다는 뜻을 가진 십제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백제로 바뀌었습니다.
논쟁
이 세 이야기 중 어느 것이 가장 정확한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특히 온조 설화 중 '하남 위례성'이라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몽촌토성, 풍납토성으로 볼 가능성이 가장 높은데 여기서도 한강 유역이 아니라 임진강 유역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설화에 대한 견해 중에서 온조와 비류의 후손이 번갈아 왕위를 계승했다는 주장도 있고, 이후 온조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속 계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온조 자손이 즉위한 후에도 비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 삼국사기에까지 전해져 오고 있으며, 온조의 후손이 계속 왕이 되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또 다른 견해로는 온조와 비류는 형제 사이가 아니라 위례지방의 온조 세력과 미추홀 지역의 비류 세력이 서로 연맹 관계를 형성했음을 반영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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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건국 설화의 의의
백제가 건국했다는 이야기는 한국의 삼국 중 하나인 건국과 초기 발전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한국 역사상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백제 건국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몇 가지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국가의 정체성과 기원: 백제 건국 이야기는 한국인들에게 고대 국가에 대한 역사적 신화적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고대 국가인 백제 건국의 중요성과 고유한 한국 문명의 확립을 강조하고 이들을 국가 공유 유산 의식으로 이어집니다.
2. 문화유산 : 백제는 특히 예술, 건축, 불교 분야에서 한국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백제가 건국한 이야기는 왕국의 문화유산과 한국의 예술적 정신적 발전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3. 정치적 구성: 백제의 건국은 한반도 정치 형성에 중요한 고비가 됩니다. 백제가 독자적인 통치자, 정부 구조, 영토경계를 가진 주권국가로 등장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이야기는 삼국시대 한국의 정치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기여합니다.
4. 자연과 신과의 관계: 백제 건국 이야기에는 백제 건국 이야기에 반영된 신화와 정신의 요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제의 건국 이야기 중 신과 관계된 이야기는 고대 한국 사회에 퍼져 있던 뿌리 깊은 신앙 체계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인간과 신과 자연계의 연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건국 이야기에는 신화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종종 역사적 진리의 핵심을 담고 있거나 특정 시대의 사회적•문화적 맥락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백제 건국 이야기는 이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의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열망을 전해줍니다. 백제와 삼국시대의 역사적 기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역사에 대한 지식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마무리:
전반적으로 백제 건국 이야기가 갖는 의미는 한반도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왕국의 역사적 이야기를 잘 보존하고 전승하는 문화적 시금석의 역할에 있습니다. 민족정체성을 확립하고 왕국의 문화적 정치적 공헌을 강조하며 고대 조선인들의 신앙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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